저 고등학생 때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이하 영절하)라는 책이 출판됐어요. 단어와 문법 외우는 게 끔찍하게 싫었던 제게 이보다 더 달콤한 제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절하에서 가장 강렬하게 주장했던 게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아기가 영어를 배울 때 문법 공부하냐!
귀를 언어에 많이 노출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주구장창 들어라, 잘 때도 들어라!
저절로 영어 잘하게 된다!!!
영어 관련 유튜브 영상 중엔 저 책에 대한 비판도 많아요. 성인의 영어학습은 아기가 언어를 받아들이는 뇌활동과 다르다는 뇌과학적 비판도 있고, 언어란 '듣기-말하기-쓰기-학문'에 이르는 활동의 집합이므로 듣기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는 설명 등.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주장들입니다.
그런데 영.절.하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보면, 사실 열심히 들은 다음의 후속과제가 있었어요. 받아쓰고, 내 표현으로 다시 써보는 작업이죠. 마케팅 초점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에 맞춰지다 보니, "주구장창 들으면 다 된다"로 곡해되고 다른 내용은 생략된 것 같습니다. 쨌든 요즘 영어공부를 하려고 보니 한때 열심히 따라했던 책이라 괜히 생각나서 언급해 봤네요ㅎㅎ
묵은 과제 꺼내듯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하겠다 선언은 했는데, 꾸준히 할 자신이 없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건 둘째 문제고, 일단 꾸준히 해야 성과가 나오 건데 말이죠. 영어공부를 꾼준히 하기 위해, 일단 목표부터 올바로 잡고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바른 목표는 뭘까요?
'올바른 목표'의 조건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절실함을 최우선으로 꼽고 싶습니다.
다이어트 얘기 좀 빌려볼게요. 시중에 수많은 다이어트 비법이 있지만 사실 무슨 비법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어떤 비법을 따르든 꾸준히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고, 목표가 절실한 사람은 결국 해냅니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 중에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냐 싶지요. 그런데 주변의 다이어터들을 가만히 보면, '살 빼고 싶다, 날씬하면 좋겠다' 바람은 가득하지만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혹은 본인 스스로 다음과 같은 말들로 절실함을 상쇄시키거든요.
* 이 정도면 그래도 봐줄 만 해~
* 남자는 좀 쪄도 돼, 돈만 잘 벌면 장땡이지
* 키가 있는데 너 정도는 괜찮아
* 얼굴 받쳐주는데 무슨 살까지 빼
* 먹는 행복이 얼마나 큰데 살 좀 찌면 어때
그럼 절실한 건 뭐죠?
살 빼고 싶다, 날씬하면 좋겠다. 이 말은 살'도' 빼고 싶다, 날씬하면 '더' 좋겠다로 해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실은 지금도 괜찮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는 겁니다. 그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구호 외치면서 각오를 다지면 절실해지는 건가요? 사람은 그것이 필요할 때 절실해집니다. '필요'라는 건 지금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必) 있어야(要) 하는 걸 말합니다.
아이돌이 숨 끊어지지 않을 정도만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는 바로 '필요'하기 때문이죠? 대중에게 보여지는 외모가 직업적 생명으로 직결되니까요.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논외로 할게요) 일반인 다이어트 성공담의 주인공들도 그들의 삶에서 '날씬한 몸'에 대한 필요가 발생하면서 다이어트에 성공합니다.
- 의사가 살 안 빼면 죽는대, 체중 감량이 필요해
- 면접/오디션에 붙으려면 날씬한 몸이 필요해
- 뚱뚱한 엄마를 창피해 하는 아들을 위해 날씬한 몸이 필요해
- 살쪘다고 날 차버린 그 새X에게 복수하려면 날씬한 몸이 필요해
(위 예시 역시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논외로 할게요^^;)
영어는 필요해?
영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오늘도 수없이 스쳐가는 영어광고를 보며 '영어를 잘하고 싶다, 영어공부 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가 반드시 필요하진 않습니다.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지금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거든요.
어학연수 가면 현지어가 느는 이유는 그곳의 커리큘럼이 좋아서인가요? 없던 의지력도 샘솟게 하는 굿 티쳐가 많아서? 아니죠, 그저 현지에서 먹고 살려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반복해 본 말들, 가벼운 인사, 물건 사기, 길 묻기, 자기소개, 인스타 계정 묻기 정도는 두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됩니다.
고등학생 때도 영어공부 열심히 합니다. 대학 가려면 필요하니까요. "수능영어로는 영어를 못하네, 어쩌네" 하지만 그걸 꾸준히 했으면 최소한 외국인 관광객한테 길 안내, 어디 좋다, 맛집은 어디다 정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길안내가 뭔가요, 영자 신문 짧은 기사 정도는 사전 없이 읽었을 걸요.
영어 공인점수가 필수인 기업체에 입사하려는 취준생들도 영어공부 열심히 합니다. 직장인들도 승진에 영어점수 반영되는 경우 그 바쁜 와중에 어떻게든 영어공부를 하더라고요. 업무 상으로 영어를 사용해야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들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절실하거든요.
어떡하죠?
문제는 저 같은 사람들입니다. 영어가 필요한 환경에 놓여있지 않은 사람들이요. 절실하지 않아요. 절실하지 않으니 오늘 큰맘먹고 시작한 영어공부가 꾸준하지를 않습니다. 다이어트든 언어든 꾸준하지 않으면 말짱 황이죠. 저는 왜 영어를 잘하고 싶은지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왜'에 대한 답 속에서 '필요'를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그러려면 '영어를 잘한다'의 기준을 아주아주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가설들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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