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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로스쿨 적성시험 보는 당신, 이 책부터 읽어봐욥!

by 복팔이 2019. 6. 7.

한줄평_'미생(未生)'의 법조 ver.
: 웹툰 '미생'에서 장그래가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에 들어가서 본 것은 CEO의 슈퍼파워나 기업의 성공신화 같은 게 아닙니다. 업의 본질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오상식 과장과 다양한 직장인들의 몸부림을 봤죠. <검사내전>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든가, 검경유착 등(^^:) 우리네 고정관념 속 검사가 아닌, 검찰이란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 검사의 몸부림 같은 책입니다.

「검사내전」

간만에 여유가 생겨 책장 한 켠에 미뤄둔 책 한 권 집어 들었습니다.

<검사내전>. 읽으면 읽을 수록 '김웅이라는 이 검사... 아니, 이 사람 좀 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사람들이 해제낀 말잔치 속에서 얼음 같은 문장을 발굴해 가슴에 뜨겁게 새길 수 있는 안목을 가진 것 같습니다. 더럽고, 추하거나 혹은 따뜻하고 밝은 시간을 켜켜이 쌓아 진주 같은 통찰을 내뱉는 사람요. 네, 전 반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두 살바기 아들의 땡깡이 사라지는 자정너머나 출퇴근 자투리 시간에 야금야금 씹어 읽었습니다.

믿고 듣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에서 추천한 책이지만, 솔직히 손이 가지 않았더랬어요. 법조인을 꿈꾼 적도 없거니와, 머리 복잡하고 속 답답해서 법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그다지 즐겨보지 않거든요. 또 '검사'라는 단어가 썩 좋은 연상작용을 일으키지도 않잖아요...숙제 검사, 질병 검사, 신체 검사?ㅎㅎㅎ 법원의 '검사님'들을 이번 생에 굳이 만나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다 남는 시간 떼우느라 무심코 펼쳐든 프롤로그에서 명치를 때리는 한 문장을 발견하고는, 이 책 끝까지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이었다.

나사못의 임무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대한민국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벤츠 자동차를 살 때는
삼각별 엠블럼을 보고 사지만
실상 벤츠를 벤츠답게 해주는 것은
천 개의 보이지 않는 나사못들 덕분이라고 했다


 

어린시절에 아니, 지금도 "네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엠뷸럼을 갖고 싶은지만 떠올렸던 것 같아요. 어떤 나사가 될 지를 고민해 본적이 있었나 떠올려 봤는데... 글쎄요. 사실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고민인데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끝내 갖지 못한 엠뷸럼에 대한 자기 변명이나 패자의 정신승리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그저 위 문구를 읽고나니 지금 나는 내게 주어진 나사못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반성이 밀려오더군요.

사실 저 같은 서민에게는 검사라는 타이틀이 이미 벤츠 엠뷸럼이나 다름없죠. 그런 그들이 엠뷸럼이니, 나사의 역할이니를 논한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그들도 인간적인 고뇌를 한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습니다. 책 표지에 작게 붙어 있는 '생활형 검사의 사람공부, 세상 공부'라는 서브 타이틀이 새삼 다시 눈에 들어왔어요. 책을 다 읽고나니 <검사내전>이라는 제목은 미끼요, 낚아야 할 월척은 바로 이 소제목이었습니다. 

 

1장 사기 공화국 풍경

책의 구성은 어쩌면 평범합니다. 1장 '사기 공화국 풍경', 2장 '사람들, 이야기들'에서는 제목에서 예상되듯 저자가 경험한 사건들을 모아 놨어요. '경찰청 사람들'(나... 옛날 사람?) 보는 정도의 흥미와 호기심만 있다면 재미있게 읽어내려 갈 수 있게 에피소드들을 참 맛깔나고 위트 있게 썼습니다. 저자의 '아재개그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죠.

p.23
할머니는 후덕하고 진실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인상과 달리 할머니는 사기 전력만 34회에 이르고 수백억 원대 어음 사기도 귤 까먹듯 태연히 저지르는 '연쇄 사기마'였다. (중략) 누구나 갑작스런 패턴의 변화는 좋지 않은 신호라는 것을 안다. 추세가 급격히 변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남편이 갑자기 콜롬보 지갑을 사오면 그건 내연녀에게 콜롬보 백을 사주었다는 뜻이다. 의심해봐야 한다.

재미만으로도 읽어줄 용의가 다분한데, 그 와중에 각각의 의미까지 짚어줍니다. 가벼움만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참 잘 잡고 있는 책입니다.

p.71
호메로스는 만약 인간이 자기 운명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했다면 그것은 신들 탓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의 장님 때문이라고 했다. 안 박사 일당의 유혹이 사기라는 신호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중략)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을, 목사님은 못 본 것이 아니라 안 본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욕심이라는 간섭조명이 생기면 보이지 않는다.

p. 86
강 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할머니가 설마 자기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을 등칠 줄 몰랐다며 흐느꼈다. 그러나 만만한 데 말뚝 박고, 생가지보다 마른 가지 꺾는 법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니까 사기 치는 것이다. 1960년부터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를 연구했던 제인구달의 연구도 이를 입증한다. 구달에 따르면 침팬지 무리가 다른 무리를 공격할 때는 영토를 침범당하거나 위협을 당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 무리가 약할 때라는 것이다. (중략)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이것이 사기의 서글픈 두 번째 공식이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

2장 사람들, 이야기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내 주변엔 유독 사기 피해자가 많은지' 의문이 풀렸습니다. 대한민국 사기꾼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알게 됐고, 그들에게 물렸을 때 아주 작은 욕심만 들켜도 탈탈 털린다는 것을 알았어요. 귀 얇은 분들 꼭 이 책 1장, 2장만이라도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3장 검사의 사생활

그리고 3장 검사의 사생활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검사란 어떤 사람들인가, 특히 생활형 검사로서 그가 속한 조직에 대한 성찰과 비판, 그리고 애정을 보여줍니다.


4장 법의 본질에 대해서는 검사란 사람들이 다루는 법의 본질, 그 영향력과 맹점에 대해 저자의 치열한 고민의 과정 및 의견을 정리했어요.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주제가 무겁죠?^^ 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더욱 의미 있게 읽을 부분일 것 같습니다.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소위 권력과 명예의 상징인 '사자(字)직업'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추천합니다.

p.276
정의의 여신이 휘두르는 칼이 사리 분별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칼을 맞는 것은 사람인지라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진다. 한 순간의 분노가 가라앉으면 후회, 그리고 그 칼이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공포가 밀려올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까닭은 권력을 탐하기 때문이다. 그런 흉계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더욱 키우고 검찰권으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을 누가 손에 쥘 것인가에 대한 피 튀키는 싸움만 낳게 만드는 것이다. 파괴적인 정의의 여신을 만들어내기보다는 파괴적인 혁신을 해야 할 시점이다. 데이비드 흄이 말하기를 정의는 이성이나 본능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가 낳은 것이라고 했다.

p. 283
문제는 법률서비스란 되도록 받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목적지가 바로 집 앞이라면 굳이 차를 타고 갈 필요가 없듯이, 법률서비스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되도록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법률서비스는 보약이 아니다. 불가피할 때 부작용을 각오하고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일종의 치료약이다. 많이 이용한다고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중략) 소송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이라곤 다시는 송사에 휘말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정도일 것이다.